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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 송전선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과학적 해답을 기다리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불확실성, 상이한 위험 인식, 그리고 정책적 난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기술적 사안이다. 본 보고서는 이 문제의 과학적 기반부터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까지 다층적으로 분석하여, 논쟁의 본질을 심도 있게 규명하고자 한다.
분석의 핵심은 극저주파(ELF) 자기장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의해 'Group 2B: 인체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된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학 연구에서 소아 백혈병과의 통계적 연관성이 일관되게 관찰되었기 때문이나,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에는 근본적인 방법론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과학적 불확실성은 대중의 위험 인식과 전문가 집단의 평가 사이에 깊은 간극을 형성하는 주된 원인이다. 대중의 불안감은 위험의 비자발성, 통제 불가능성과 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증폭되며, 미디어는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각국의 규제 방식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는 입증된 단기적 생체 효과에 기반한 기준을 채택하는 반면, 일부 유럽 국가들은 과학적 불확실성을 근거로 '사전 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는 해당 문제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 정치 철학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 불확실성이 낳는 실질적인 피해는 부동산 가격 하락과 같은 경제적 '스티그마 효과'와 극심한 사회적 갈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논쟁의 핵심이 잠재적 건강 위험 자체만큼이나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파급 효과에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본 보고서는 이 문제의 해결책이 과학적 확실성을 기다리는 데에만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미래의 연구가 현재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할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새로운 복잡성을 더할 수도 있다. 따라서 투명성, 대중 참여, 그리고 민감 지역에 대한 사전 예방적 조치를 우선하는 포괄적인 '위험 거버넌스'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기술적 위험 평가를 넘어,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가치를 민주적 절차 안에서 통합하는 성숙한 접근법을 요구한다.
고압 송전선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학과 위험을 다루는 언어의 본질을 파악하고, 문제의 대상이 되는 물리적 현상을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 이 장에서는 논쟁의 근간을 이루는 과학적 개념과 인식론적 틀을 확립한다.
과학 담론과 대중의 언어 사이에는 종종 깊은 간극이 존재하며,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표현과 "안전하다"는 선언의 차이는 이 간극의 핵심을 이룬다. 이 둘의 의미를 혼동하는 것은 송전선 논쟁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 기술 관련 사회적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에 기반하여 작동하며, 특정 가설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증거를 축적하는 과정이다.1 따라서 과학이 어떤 유해성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말은, 현재까지 축적된 증거가 인과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예: 브래드퍼드 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정밀한 기술적 서술이다. 이는 '안전하다'는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안전'은 위험이 부재하다는 적극적인 선언이며, 과학적으로 어떤 것의 '완전한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인식론적 차이는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Absence of evidence is not evidence of absence)"라는 과학계의 격언에 잘 요약되어 있다.2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지적했듯, 이는 '모호함에 대한 조급함'을 경계하는 표현이다.4 즉, 유해한 효과를 찾는 데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유해성을 탐지하려는 연구 방법이 충분히 정교하지 않았거나 포괄적이지 않았다면 더욱 그러하다.2 물론, 잘 설계된 연구들이 장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유해성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는 안전성을 시사하는 유의미한 정보가 될 수 있다.4 송전선 논쟁의 핵심은 바로 극저주파 자기장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과연 이 높은 기준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이견에 있다.
이러한 의미론적 차이는 갈등의 주요 원천으로 작용한다. 과학자나 규제기관이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할 때, 이는 증거의 현 상태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대중은 이 말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거나 "아직 증거를 못 찾았을 뿐 위험은 실재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전력회사와 같은 이해관계자는 이 표현을 근거로 '안전하다'고 주장하며 논리적 비약을 범하기도 한다. 결국 동일한 과학적 불확실성 상태를 두고, 한쪽은 '잠정적 안전'의 신호로, 다른 한쪽은 '미확인된 위험'의 신호로, 또 다른 쪽은 '사전 예방'의 근거로 해석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고압 송전선과 일상 가전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종종 대중 담론에서 혼용되지만, 물리적 특성과 인체 노출 패턴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논쟁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주파수 및 종류: 고압 송전선은 60Hz의 극저주파(Extremely Low-Frequency, ELF) 자기장을 주로 발생시킨다.6 이는 엑스선(X-ray)과 같은 전리방사선과 달리, 화학적 결합을 파괴하거나 DNA를 직접 손상시킬 에너지를 갖지 않는 비전리방사선에 해당한다.7 매우 높은 강도의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될 경우 확인된 급성 생물학적 효과는 인체 조직을 가열하는 '열 효과(thermal effect)'가 아니라, 신경 및 근육 세포를 자극하는 '비열 효과(non-thermal effect)'이다.6 반면, 휴대전화는 이보다 주파수가 훨씬 높은 고주파(Radiofrequency, RF)를 사용한다.6
강도와 거리: 자기장의 세기는 발생원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급격히 감소하는 특성을 가진다.6 전자레인지(약 200mG)나 헤어드라이어(약 50~100mG)와 같은 가전제품은 사용 시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강한 자기장을 발생시킬 수 있다.6 이에 비해 765kV 초고압 송전선에서 주거 지역에 해당하는 80~100미터 떨어진 지점의 자기장 세기는 3~3.6mG 수준으로 훨씬 낮을 수 있다.6
노출 패턴: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가전제품으로 인한 노출은 일반적으로 강도는 높지만 시간이 짧고 간헐적이다. 반면, 송전선 인근 주민의 노출은 강도는 낮지만 만성적이고 지속적이다.
송전선의 위험을 경시하기 위해 "당신이 쓰는 헤어드라이어의 자기장이 더 강하다"는 주장이 흔히 제기된다. 이는 최대 강도 측면에서는 사실일 수 있으나 6, 시간이라는 결정적 차원을 무시하기 때문에 매우 오해의 소지가 큰 비교이다. 극저주파 자기장의 잠재적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가설은 단시간의 고강도 노출이 아닌, 장기간의 지속적인 노출로 인한 미묘한 세포 수준의 변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루 10분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것과 24시간 내내 송전선 자기장에 노출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논쟁의 핵심은 짧고 강한 에너지 충격이 아니라, 약하지만 끊임없는 환경 신호의 잠재적 영향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아래 표는 주요 전자파 발생원의 특성을 비교하여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표 1: 주요 전자파 발생원 특성 비교
| 발생원 | 주파수/종류 | 자기장 세기 (일반 사용 거리) | 자기장 세기 (80m 거리) | 노출 패턴 | 주요 생체 상호작용 |
|---|---|---|---|---|---|
| 765kV 송전선 | 60Hz 극저주파(ELF) | 3~3.6mG (80m 이격 시) 6 | 3~3.6mG 6 | 만성적/지속적 | 비열 효과 (신경자극) 6 |
| 헤어드라이어 | 60Hz 극저주파(ELF) | 50~100mG (근접 사용 시) 6 | 거의 0mG | 급성적/간헐적 | 비열 효과 (신경자극) 6 |
| 전자레인지 | 2.45GHz 고주파(RF) | 약 200mG (근접 사용 시) 6 | 거의 0mG | 급성적/간헐적 | 열 효과 6 |
| 휴대전화 | 800MHz~2.6GHz 고주파(RF) | IARC 2B 등급 6 | 거의 0 | 급성적/간헐적 | 열/비열 효과 6 |
이 장에서는 논쟁에 불을 지핀 핵심 과학적 증거, 즉 역학 연구 결과와 그 결과가 가진 심각한 한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수십 년간 극저주파 자기장과 다양한 질병의 연관성을 조사하는 연구가 수행되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약한 연관성이 지속적으로 관찰된 것은 소아 백혈병이 유일하다. 이 단일한 발견이 전 세계적인 논쟁의 닻 역할을 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고압 송전선 주변 어린이의 암 발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11 이후 여러 역학 연구, 특히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 분석하는 '통합 분석(pooled analysis)'에서, 평균 자기장 노출 수준이 높은(통상 0.3~0.4µT, 즉 3~4mG 이상) 환경에 거주하는 어린이의 백혈병 발병 위험이 약 2배 증가한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났다.12
이러한 통계적 연관성을 근거로,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2년 극저주파 자기장을 **"Group 2B: 인체 발암 가능 물질(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로 분류했다.6 이 등급은 인체 발암성에 대한 증거가 '제한적(limited)'이고 실험동물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less than sufficient)'할 때 사용된다. 커피, 젓갈, 고사리와 같은 식품도 이 등급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종종 이 분류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16 WHO는 이 통계적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과관계로 보기에는 증거가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고 평가하며 '사전 예방적 조치'를 권고하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13
일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위험 추정치를 기반으로 잠재적 환자 수를 추산하기도 했다. 한국의 한 환경부 용역 보고서는 송전선 전자파가 향후 10년간 29명에서 38명의 소아 백혈병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추정했으나, 이는 국제 연구의 위험률을 국내 상황에 대입한 가상적 시나리오이며, 한국전력 등은 이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17
이 소아 백혈병과의 연관성은 과학계에 '약한 신호(weak signal)' 문제라는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역학에서 상대위험도(relative risk) 2.0은 약한 연관성으로 간주된다. 흡연과 폐암의 상대위험도가 10에서 3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하다. 약한 연관성은 선택 편향(selection bias), 회상 편향(recall bias)과 같은 연구 설계상의 오류나, 측정되지 않은 제3의 요인, 즉 교란변수(confounder)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약한 신호가 수십 년간 여러 국가에서 수행된 다양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는 점 때문에, 이를 단순한 우연이나 오류로 치부하기 어렵다. 결국 소아 백혈병 데이터는 과학적 연옥에 갇힌 상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인과관계의 증거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약하지만,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끈질기게 나타난다. 이 지속적인 모호함이야말로 논쟁을 이끄는 과학적 엔진이다.
'약한 신호'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이유는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 연구가 가진 근본적이고 어쩌면 해결 불가능한 방법론적 난제들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들이 과학적 확실성을 가로막는 주된 장벽이다.
노출 평가의 어려움: 이는 모든 연구의 가장 큰 난관이다.15 자기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디에나 존재하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 매우 변동이 심하다. 연구자들은 개인의 평생 누적 노출량, 특히 결정적 시기인 유년기의 노출량을 정확하게 복원하기가 매우 어렵다.15 송전선과의 거리, 전선 형태(wire code), 특정 시점의 현장 측정 등은 모두 실제 노출량을 대변하는 불완전한 대리 지표에 불과하다.
긴 잠복기: 백혈병과 같은 암은 발병까지 오랜 잠복기를 가진다. 질병과 관련된 결정적 노출은 진단 시점으로부터 수년, 혹은 십수 년 전에 일어났을 수 있어, 과거의 노출량을 정확히 회상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15
교란변수의 통제: 약한 연관성은 송전선 근처에 거주하는 것과 관련된 다른 요인에 의해 발생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송전선 인근 지역은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거나, 교통량이 많거나, 다른 환경오염원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으며, 이것이 진정한 원인일 수 있다.15 가능한 모든 교란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용량-반응 관계의 부재: 노출량이 증가할수록 위험도도 비례하여 증가하는 명확한 '용량-반응 관계'를 보여주는 연구는 거의 없다. 이는 인과관계 가설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20
이러한 문제들은 연구가 방법론적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관성을 명확히 증명하거나 반증하기 위한 이상적인 과학적 방법은 대규모 장기 무작위 대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겠지만, 이는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가족을 무작위로 송전선 근처에 거주하도록 배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본질적으로 위에 언급된 편향과 한계에 취약한 관찰 역학 연구(환자-대조군 연구, 코호트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 40년간 수행된 것과 동일한 방식의 역학 연구가 갑자기 명확한 답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모호함은 연구자들의 실패가 아니라, 연구 문제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인 것이다. 이는 결국 이 논쟁이 실험실이 아닌 정책과 사회의 장에서 결론 내려질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표 2: 극저주파 자기장 역학 연구의 주요 방법론적 난제
| 난제 | 설명 | 인과관계 추론에 미치는 영향 |
|---|---|---|
| 노출 평가 | 자기장은 비가시적, 편재적, 변동성이 커 과거의 개인별 누적 노출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15 | 관찰된 연관성이 실제 노출이 아닌, 부정확한 노출 추정으로 인한 통계적 오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
| 긴 잠복기 | 암 발병과 관련된 결정적 노출은 진단보다 수년 전에 발생했을 수 있어, 정확한 데이터 확보가 어려움.15 | 질병과 노출 사이의 시간적 선후관계를 명확히 입증하기 어려움. |
| 교란 요인 | 송전선 인근 거주는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다른 환경오염원 등과 연관될 수 있으며, 이것이 진정한 원인일 수 있음.15 | 관찰된 연관성이 극저주파 자기장이 아닌 제3의 요인에 의한 허위 관계일 가능성이 있음. |
| 약한 연관성 | 관찰된 상대위험도가 2.0 내외로 낮아, 작은 편향이나 오류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음.14 | 인과관계로 해석하기에는 통계적 강도가 부족하며, 우연에 의한 결과일 가능성을 높임. |
| 선택 편향 | 연구 참여자 선정 과정에서 특정 그룹이 체계적으로 포함되거나 배제되면서 결과가 왜곡될 수 있음. | 연구 결과가 전체 인구를 대표하지 못하고, 특정 집단에만 국한된 편향된 결론을 내릴 수 있음. |
역학 연구에서 관찰된 통계적 연관성을 인과관계로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약한 비전리 극저주파 자기장이 암을 유발하거나 촉진할 수 있는, 널리 인정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없다는 점이다.
앞서 밝혔듯이, 극저주파 자기장은 환경 수준에서 의미 있는 열을 발생시키거나 원자를 이온화시키지 않는다.7 이는 방사선으로 인한 발암의 고전적인 메커니즘이 적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세포나 동물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양의 실험실 연구 역시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이 DNA를 손상시키거나 암을 유발한다는 일관된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14 이러한 실험실 연구의 뒷받침 부재는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원(NIEHS)과 같은 기관이 건강 위험 확률을 '작다'고 결론 내리는 주된 이유다.21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 감소나 세포 간 신호전달 교란과 같은 몇 가지 잠재적 메커니즘이 제안되었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22 최근 연구들은 산화 스트레스, 염증 반응, 유전적·후성유전학적 변화와 같은 더 미묘한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20 일부 연구에서 이러한 효과가 관찰되기도 하지만, 결과가 일관되지 않거나 일반적인 환경 노출 수준보다 훨씬 높은 자기장 강도에서만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세포 수준의 변화가 인체, 특히 소아 백혈병 발병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확립되지 않았다.23
이는 역학과 생물학 사이의 심각한 단절을 보여준다. 공중보건학에서 인과관계의 '황금률'은 집단 수준의 통계적 연관성(역학)과 실험실 수준의 작용 기전(생물학적 타당성)이 모두 존재해야 한다. 극저주파 자기장의 경우, 약하지만 끈질긴 역학적 신호는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생물학적 증거는 거의 전무하다. 역학자들은 "통계적인 연기가 계속 피어오른다"고 말하는 반면, 생물학자들은 "그 연기를 만들어낼 만한 불씨를 찾을 수 없다"고 답하는 형국이다. 이 간극이 메워지기 전까지 과학계는 깊은 불일치 상태에 머물 것이며, 인과관계에 대한 최종 결론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과학적 데이터를 넘어 인간의 반응을 탐구한다. 왜 대중의 공포는 종종 대부분의 과학 기관이 표명하는 우려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지, 그 심리적·사회적 동인을 분석한다.
대중의 위험 인식은 단순한 확률 계산이 아니다. 특정 위험이 가진 질적 특성이 과학적 데이터를 압도하는 강력한 정서적 반응, 즉 '공포(dread)'와 '분노(outrage)'를 유발하는 복잡한 심리 과정이다. 고압 송전선은 이러한 '공포 유발' 특성을 다수 지니고 있다.
위험 인식은 통계를 넘어 감정, 가치, 그리고 위험의 질적 특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25
이러한 현상은 '두 가지 다른 합리성'의 충돌로 설명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은 계량적 데이터, 통계적 유의성, 인구 집단 수준의 위험 확률에 초점을 맞추는 '기술적 합리성'에 따라 움직인다. 이 관점에서 송전선의 위험은 기껏해야 매우 작다. 반면, 대중은 공정성, 통제, 자발성, 신뢰와 같은 질적 요소를 중시하는 '사회적 또는 직관적 합리성'에 따라 판단한다. 이 관점에서, 불신하는 주체에 의해 자신의 아이들에게 비자발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위험이 부과되는 것은 통계적 확률과 무관하게 매우 위협적이다. 따라서 이 갈등을 '비합리적인 대중 대 합리적인 전문가'의 구도로 보는 것은 오류이다. 이는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일관된 두 개의 다른 논리 체계와 합리성의 충돌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개인의 초기 위험 인식은 사회를 통해 처리되고 소통되는 과정에서 증폭되거나 감쇠된다. '위험의 사회적 증폭 프레임워크(Social Amplification of Risk Framework, SARF)'는 송전선 논쟁이 어떻게 성장하고 유지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강력한 모델을 제공한다.
SARF는 위험이 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소통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가정한다.27 새로운 과학 연구 결과나 지역의 암 발병 사례와 같은 초기 '위험 사건' 또는 신호는 '사회적 증폭소(social amplification stations)'에 의해 처리된다.28 이러한 증폭소에는 미디어, 정부 기관, 과학 단체, 시민운동 단체, 지역사회 네트워크 등이 포함된다.29 이들은 정보를 극화하거나 경고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신호를 '증폭'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중요성을 축소하거나 안심시키는 맥락을 제공하여 신호를 '감쇠'시키기도 한다.28
이 과정은 부동산 가치 하락(스티그마), 정치적 갈등, 규제 강화와 같은 2차적 파급 효과, 즉 '파문 효과(ripple effects)'를 낳는다. 이러한 2차적 영향은 때로 원래의 물리적 위험 자체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28 송전선 문제는 SARF가 작동하는 교과서적인 사례다.33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파문 효과'가 논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실질적 피해라는 것이다. 극저주파 자기장의 직접적인 건강 피해는 과학적으로 불확실하며, 만약 실재하더라도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 불확실한 위험의 사회적 증폭은 밀양 사태와 같은 수년간의 법적 투쟁, 공동체의 분열, 막대한 정신적 스트레스,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사업 지연과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상당한 경제적 손실 등, 부인할 수 없고 비용이 많이 드는 2차적 결과를 초래했다. 공공 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관리해야 할 주요 문제는 불확실한 건강 위험뿐만 아니라, 증폭 과정에서 생성되는 확실하고 심각한 사회경제적 결과이다. '위험'은 이제 갈등 그 자체가 되었다.
미디어는 아마도 가장 강력한 사회적 증폭소일 것이다. 미디어는 어떤 기사를 선택하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며, 논쟁을 어떻게 구성(framing)하는지를 통해 대중이 이 문제를 사소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볼지, 아니면 중대한 공중보건 위기로 볼지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미디어 보도는 대중의 위험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다.29 WHO의 2B 등급 분류나 밀양 사태와 같은 주요 언론 보도 시점에 맞춰 전자파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급증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35
이러한 증폭 과정은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훨씬 더 빠르고 복잡하게 전개된다.34 미디어의 제도적 유인은 미묘한 위험 소통의 목표와 상충될 수 있다. 저널리즘의 목표(독자 유인, 흥미로운 이야기 전달, 권력 감시)는 과학적 소통의 목표(미묘함, 불확실성, 통계적 맥락 전달)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송전선, 백혈병 위험 2배 높여"와 같은 헤드라인은 "역학 연구 통합 분석 결과, 고강도 극저주파 자기장 평균 노출과 소아 백혈병 간에 통계적으로 약하지만 지속적인 연관성이 관찰되었으나, 이는 실험실 연구로 뒷받침되지 않으며 통제되지 않은 편향의 결과일 수 있음"이라는 제목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결국 미디어는 정보의 중립적 전달자가 아니라, 위험의 사회적 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자이다.
이 장에서는 과학적 불확실성과 사회적 갈등이 낳는 현실 세계의 결과를 검토한다. 각 사회가 이 위험을 어떻게 규제하기로 선택했는지, 그 경제적 여파는 무엇이며, 근본적인 윤리적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잠재적으로 심각하고 비가역적인 피해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지배적인 정책 접근법 중 하나는 '사전 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다. 이 원칙은 대한민국과 ICNIRP가 권고하는 '결과 기반 접근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전 세계적으로 매우 다른 규제 기준을 낳았다.
사전 예방의 원칙은 심각하거나 비가역적인 피해의 위협이 있을 경우, 완전한 과학적 확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환경 파괴를 예방하기 위한 비용 효율적인 조치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36 이 원칙은 유해성을 입증해야 하는 입증 책임을 잠재적 위험을 유발하는 활동 주체에게 전환시킨다.36 이는 '입증된' 위험이 아닌 '잠재적' 위험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예방(prevention)의 개념과 구별된다.37
반면, 대한민국이 따르는 국제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ICNIRP) 가이드라인은 신경 자극과 같은 '확립된' 단기 효과에 기반한다.39 일반 대중에 대한 60Hz 자기장 기준치는 83.3µT(833mG)이다.40 이 기준은 알려진 급성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불확실한 장기적 암 위험을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몇몇 유럽 국가들은 민감한 장소에 대해 사전 예방적 접근을 채택했다. 스위스(1µT), 이탈리아(3µT), 네덜란드(정책 목표 0.4µT 미만) 등은 학교, 병원, 주택가 근처의 자기장 노출에 대해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설정했다.40 이 기준들은 해당 수준에서 유해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소아 백혈병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노출을 줄이려는 정책적 결정의 산물이다.
이러한 규제의 차이는 근본적인 철학적 선택을 반영한다. 83.3µT라는 ICNIRP/한국 기준은 '알려진' 생물학적 효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과학적으로 방어 가능하다. 이는 '결과 기반' 기준이다. 반면, 1~3µT라는 스위스/이탈리아 기준은 과학적으로는 임의적일 수 있지만(2µT가 4µT보다 안전하다는 증거는 없다),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합리적'이다. 이는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다. 따라서 어느 기준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은 과학적 논쟁이 아니다. 이는 "한 사회는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용납할 것인가?", "그 불확실성의 부담은 누가 져야 하는가?"와 같은 가치에 대한 논쟁이다. 국제 기준의 현격한 차이는 이 문제가 과학을 넘어 정치 철학과 위험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영역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다.
표 3: 극저주파 자기장(60Hz) 공공 노출에 대한 국제 규제 기준 비교
| 국가/기관 | 노출 한계 (µT) | 기준의 근거 | 비고 |
|---|---|---|---|
| ICNIRP / 대한민국 | 83.3 µT | 결과 기반 (입증된 단기 효과 예방) |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한 국제 권고 기준 40 |
| 스위스 | 1 µT | 사전 예방 원칙 | 학교, 병원 등 '민감 구역'에 적용 40 |
| 이탈리아 | 3 µT | 사전 예방 원칙 | 주거지, 학교 등 '정온시설' 인근에 적용 40 |
| 네덜란드 | 0.4 µT (정책 목표) | 사전 예방 원칙 | 어린이 시설과 전력선 사이 이격거리 확보 권고 40 |
| 미국 | 연방 기준 없음 | - | 주(州)별로 상이한 기준 적용 |
송전선을 둘러싼 공포와 불확실성은 부동산 가치 하락이라는 직접적이고 측정 가능한 경제적 결과를 낳는다. 이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는 위험의 사회적 증폭이 낳은 구체적인 산물이다.
여러 연구는 고압 송전선과의 근접성이 부동산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42 가격 하락의 주된 동인은 심리적 불안, 미관상 불쾌감, 그리고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인식된' 건강 위험에 뿌리를 둔 스티그마 효과로 분석된다.42 또한, 해당 지역의 부동산 거래량 자체가 매우 저조하여, 가격을 떠나 매매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상도 나타난다.42
한국의 한 연구는 이 스티그마 효과가 약 **5%**의 가격 하락을 유발한다고 계량화했으며 42, 제주도 사례 연구에서는 송전선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지가가 상승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43
부동산 시장은 과학적 위험이 아닌 대중의 공포를 측정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인 주택 구매자들은 이용 가능한 정보와 미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직접 역학 연구를 수행하는 대신, 위험에 대한 '인식', 철탑의 시각적 위압감, 그리고 미래의 구매자 역시 같은 이유로 구매를 꺼릴 것이라는 '우려'에 반응한다. 따라서 가격 하락은 암에 걸릴 통계적 확률에 대한 시장의 계산이 아니라, 스티그마가 부여된 기술 근처에 사는 것의 '사회적, 심리적 부담'에 대한 시장의 평가이다. 결국, 건강 위험의 실재 여부가 불확실하더라도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명백히 실재한다. 이는 과학적 논쟁의 결과와 무관하게 주민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설령 송전선의 위험이 극히 미미하거나 존재하지 않더라도, 송전선을 부설하는 과정 자체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사회 전체의 광범위한 편익을 위해, 소수의 지역 주민에게 잠재적 부담(위험, 스티그마, 미관 훼손)을 집중적으로 부과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송전선 갈등은 전형적인 비선호시설(LULU: Locally Unwanted Land Use) 입지를 둘러싼 공공-주민 간 갈등의 사례다.44 갈등의 핵심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국가적 필요와 지역 주민의 생활권 및 건강권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다.45
효과적인 갈등 관리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을 넘어, 진정한 대화, 투명한 정보 공유, 그리고 참여적 의사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46 목표는 주민들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46
이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의 문제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의 문제에 가깝다. 분배적 정의는 "위험과 편익의 분배가 공정한가?"를 묻는다. 이 경우, 편익은 광범위하고 부담은 국지적이므로 종종 불공정하다. 절차적 정의는 "의사결정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며, 포용적이었는가?"를 묻는다. 밀양 사태와 같은 극심한 갈등은 종종 전자파에 대한 구체적인 공포보다는, 자신들의 의견이 무시된 채 멀리서 일방적으로 결정이 내려졌다는 무력감, 무시, 그리고 절차적 부정의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다. 투쟁은 존엄성과 발언권에 대한 싸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위험 관리 전략은 기술적 위험 수준이나 보상액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지역사회를 존중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우선시해야 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미래를 조망한다. 새로운 과학 기술이 현재의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을지 평가하고, 이 지속적인 사회적 과제를 관리하기 위한 더 건설적인 틀을 제안한다.
과거의 연구가 교착 상태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기술과 연구 접근법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가까운 미래에 간단하고 명확한 해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복잡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미래 연구는 더 많은 복잡성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매우 민감한 신기술(오믹스 기술, 첨단 바이오센서 등)이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에 반응하여 특정 유전자가 미세하게 발현되거나 억제되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발견은 논쟁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미세한 생물학적 변화의 임상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이 유해한 효과인가, 무해한 적응 과정인가, 아니면 통계적 노이즈인가?"라는 새로운 논쟁을 시작할 것이다.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마법의 탄환' 같은 연구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미래의 연구는 생체-전자기 상호작용에 대한 더 상세하고 복잡한 그림을 제공하겠지만, 송전선 근처에 사는 것이 '안전한가'라는 핵심적인 공중보건 질문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불확실성은 단지 더 정교해질 뿐이다.
과학적 확실성이 단기간에 확보될 가능성이 낮은 현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은 순수한 기술적 위험 평가 모델에서 벗어나 과학, 공공의 가치, 그리고 민주적 원칙을 통합하는 더 넓은 '위험 거버넌스'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의 해결책은 거버넌스에 있으며, 과학만으로는 부족하다. 본 보고서의 분석은 송전선 문제가 방법론적 교착 상태와 생물학적 메커니즘 부재로 인해 과학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공포의 심리학과 위험의 사회적 증폭 현상 때문에 단순히 위험이 '작다'고 선언하고 대중의 우려를 무시하는 접근법도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입증한다.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길은 불확실성을 공정하고 투명하며 대중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궁극적인 제언은 이 문제를 엔지니어와 과학자만이 해결할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정보가 의사결정의 중요한 한 요소로 참여하는, 견고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해 관리해야 할 사회적 딜레마로 다루는 것이다.